이미 많은 제조업체가 직접 만든 상품에 서비스를 더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타이어 제조사 미슐랭(Michelin/미쉐린)은 타이어와 엔진에 센서를 달아 고객이 운전 습관을 교정하고 연료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엘리베이터 제조기업 티센크루프(Thyssenkrupp)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기 전, 어떤 부품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예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조업의 서비스화를 뜻하는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은 제조업 혁신을 이끄는 한 축이다. 제조와 서비스를 접목하는 여러 기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현실 세계의 기계·장비 등을 가상 세계에 똑같이 구현하는 기술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면 제품 자체뿐 아니라 제조 시스템, 제품이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등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기업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 출시 속도를 단축하고, 운영을 개선하며, 불량을 줄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다.
세계 최대 타이어 및 고무 제조업체 브리지스톤(Bridgestone)은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통해 타이어 수명을 늘리고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 타이어 수명은 부하, 운행 속도, 도로 상태 및 주행 동작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브리지스톤은 디지털 트윈을 이용해 다양한 주행 조건을 시뮬레이션하고 각각의 요인이 타이어 성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PPK(km당 가격) 타이어 구독 모델’이라는 서비스를 개발해 신규 수익을 창출했다.
맞춤형 서비스 더한 입생로랑 페르소 립스틱
로레알은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 2021’에서 AI 기반 가정용 뷰티 기기를 선보였다. 로레알의 뷰티 브랜드 ‘입생로랑’이 출시한 이 기기 이름은 ‘루즈 쉬르 므쥐르 바이 페르소(페르소)’로, 매일 아침 사용자 컨디션에 맞춘 립스틱을 제조해 주는 게 특징이다.
페르소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에는 로레알의 색조 전문 기술을 반영한 AI가 탑재돼 있다. 이 AI는 사용자가 ‘셀카’를 찍어 올리면 그날 입은 의상과 피부 톤을 분석해 어울리는 립 컬러를 추천한다. 사용자는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해당 립스틱을 입술에 얹어볼 수 있다. 그 결과에 만족하면 페르소가 해당 컬러 립스틱 1회 사용분을 즉시 제조한다. 만들어진 립스틱은 기기 윗부분을 통해 나오는데, 소비자가 이 부분만 분리해 파우치에 넣고 외출할 수도 있다.
매일 아침 사용자 컨디션에 맞춘 립스틱을 제조해주는 '루즈 쉬르 므쥐르 바이 페르소'. (출처 : 로레알)
로레알은 지난해 ‘CES 2020’에서 기초 스킨케어 제품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페르소 스킨케어 기기를 소개한 바 있다. 이때는 사용자가 페르소 모바일 앱을 통해 자기 얼굴 사진을 촬영하면 주름이나 반점, 모공 등 피부 상태를 분석해 이에 적합한 제품을 만들어줬다. 이 기기에는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 질감이나 수분 정도를 입력할 수 있고, 날씨·온도·꽃가루·자외선 지수 등 사용자를 둘러싼 환경 데이터도 반영할 수 있다. AI가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해 만든 ‘오직 나만을 위한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자는 그때그때 바르기만 하면 된다.
과거엔 제조사가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디지털 기술은 이 장벽을 크게 낮추고 있다. 이제는 과거 상상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소방관 헬멧, 경험을 디자인하다
디지털 기술은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도 제공한다. 미국 퀘이크 테크놀로지(Qwake Technologies)가 개발한 소방관용 특수 헬멧 ‘시스루(C-thru)’에는 소형 HUD(헤드업 디스플레이) 장비가 장착돼 있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휴대용 열화상 카메라에 AI 기반 증강현실(AR) 센서를 접목해 만든 이 장비를 사용하면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에서도 사물 윤곽을 쉽고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소방관이 화염 속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찾아내기 한결 쉬워지는 셈이다.
미국 ‘퀘이크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소방관용 특수 헬멧 ‘시스루(C-thru)’를 착용하면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에서도 사물 윤곽을 쉽고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출처 : 퀘이크 테크놀로지)
시스루 헬멧에는 통신장비도 내장돼 있다. 소방관들은 이 헬멧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실시간으로 화재 현장 영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지휘센터가 소방관 위치를 파악하고 서로에게 전송해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화재 진압 작전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씨스루 헬멧을 착용하면 이동 속도가 최대 5배 빨라진다고 한다.
플랫폼 구축해 팬데믹 돌파한 나이키
디지털 기술은 제조와 유통의 경계도 무너뜨리고 있다. 고객에게 새로운 서비스와 경험을 제공하는 제조사들이 기존 유통 시스템에서 벗어나 독자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나이키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에서 사라진 게 한 사례다.
탈(脫)아마존을 선언한 나이키는 독자적인 D2C(Direct To Consumer·소비자 직거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들었다. 제조업체가 직접 쇼핑몰을 운영하면 브랜드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전달하며 소비자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유통 비용이 상대적으로 절감되고 고객 데이터를 직접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이키는 ‘Run Club’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멤버십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출처: 나이키)
나이키는 D2C 플랫폼 구축 등에 2019년에만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또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 제공업체 ‘조디악’과 AI 기반 수요 예측 및 재고관리 기업 ‘셀렉트’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나이키는 D2C를 활성화하고자 ‘나이키플러스’라는 멤버십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나이키는 Run Club, 트레이닝 클럽 등 다양한 앱을 운영하는데, 트레이닝 클럽 앱의 경우 사용자에게 매달 약 15달러 수준의 트레이닝 비디오와 운동 음악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회원 수가 급증했다. 결과적으로 나이키는 D2C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고객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해 고객에게 다시 팔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으로 세계 의류업계가 타격을 입은 가운데서도, 2020년 하반기 나이키 온라인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16.7%로 최근 4년 내 최고치를 찍었다.
| 글 / 이노핏파트너스 윤정원 대표
| 정리 / 이노핏파트너스 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