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파 값이 폭등했다. 그 여파로 집에서 직접 대파를 길러 먹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파테크(대파+재테크)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대파만이 아니다. 특정 농산물 값이 널뛰기를 할 때마다 집에서 채소를 재배하려는 수요가 늘어난다. 2018년 빛과 온도, 바람 등을 자동으로 최적화해 주는 가정용 식물재배기가 개발되면서 집에서 채소 키우기가 훨씬 간편해졌다. 요즘은 인공지능(AI) 식물재배기 시장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추세다.
산업 측면에서는 전통 농업에 기술을 접목한 애그테크(Ag Tech·농업+기술)가 급성장하고 있다. 현대 농업은 기후변화뿐 아니라 농가소득 정체, 곡물자급률 하락,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생산, 유통, 소비 등 농업 전 과정에 첨단기술(AI, 빅데이터, 무인드론, 로봇 등)을 도입하는 이른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햇빛 없는 지하철에서 채소가 쑥쑥 자라는 이유
서울지하철 2호선 충정로·을지로3가역, 5호선 답십리역, 7호선 상도역·천왕역 등을 이용하는 시민이라면 한 번쯤 역사에서 푸른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메트로팜’이라고 하는 이 ‘농장’에서는 연중 24시간 채소가 재배된다. 햇빛도 흙도 없는 지하철역 유휴 공간에 실내 농장을 조성한 기업은 ‘팜에이트(Farm8)’다.
서울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 있는 실내수직농장 ‘메트로팜’. [홍태식]
팜에이트는 식물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환경 요소(빛,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양분 등)를 인공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밀폐형 재배 시스템을 구축해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없는 환경에서 식물을 안정적으로 계획 생산한다. 팜에이트가 지하철역에 만든 메트로팜은 선반을 수직으로 층층이 쌓아 올려 식물을 재배하는 실내 수직 농장이다. 최근 세계적 관심이 큰 농업 기술 중 하나다. 메트로팜에서는 주로 엽채류(이자트릭스, 버터헤드 등)와 허브류(바질, 루콜라 등)를 재배한다. 모두 샐러드나 쌈에 활용되는 유럽 품종 작물이다. 우리 농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유럽 품종을 도입했다고 한다. 팜에이트가 빅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채소 생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메트로팜 생산성은 농지에 비해 약 40배 높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80~90일 걸리는 양상추는 40여 일 만에 다 자란다.
디지털 시대, AI가 돼지 기른다!
돼지고기는 농축산품 가운데 내수 소비가 가장 많은 품목이다. 반면 국내 양돈업 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 한국축산데이터의 가축 헬스케어 솔루션 ‘팜스플랜’은 농장 내 폐쇄회로(CC) TV를 통해 가축 체중과 이상행동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농장주에게 알려준다. 인력을 들이지 않고도 가축 관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출처 : 팜스플랜
가축 혈액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분석하는 등 첨단기술로 질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농장 유지·관리에 AI, 빅데이터, 생명공학 등을 활용하는 팜스플랜에 가입한 돼지농장의 가축 폐사율은 5%대다. 국내 평균 돼지 폐사율(약 12%)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형 농장에서는 폐사한 돼지를 사람이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반면 CCTV가 즉각적으로 문제를 인식해 농장주에게 알려주면 집단 폐사로 이어지기 전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또 돼지농장에 첨단기술을 도입하면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팜스플랜 가입 농장은 항생제 사용량을 최대 80% 줄였다고 한다. 팜스플랜은 향후 이 서비스를 소, 닭 농장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잘 익은 과일만 골라서 따주는 수확 로봇
최근 애그테크 분야에서 연구가 가장 집중되는 분야는 농작물 수확로봇 개발이다. 세계 각국에서 농업인구가 감소하는 데다 개발도상국 경제발전과 선진국의 이민 규제로 단기 노동자 유입마저 힘들어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기업 옥티니온이 만든 수확로봇 ‘루비온(Rubion)’은 딸기를 하루에 360kg 수확한다. 사람의 하루 평균 수확량 50kg의 7배가 넘는 양이다. 딸기처럼 부드러운 과일을 로봇이 수확하는 건 그동안 까다로운 과제로 여겨졌다. 과일이 익었는지 확인한 후 으깨지지 않게 따내는 게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벨기에 기업 옥티니온이 만든 딸기 수확로봇 ‘루비온’이 농장에서 잘 익은 딸기를 골라 따고 있다. 출처 :옥티니온
루비온은 딸기에서 반사된 빛을 감지해 얼마나 익었는지 판별하고 잘 익은 딸기만 골라서 따는 기술을 갖고 있다. 잘 익은 딸기를 따낸 다음 크기와 무게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개발한 양상추 수확로봇 ‘베지봇(Vegebot)’도 잘 익은 양상추만 골라 잘라낸다. AI에 다양한 양상추 사진을 학습시켜 양상추가 익었을 때 보이는 특징을 파악하도록 한 결과다. 양상추는 지면에 붙은 채 자라는 데다 잎이 말려 있어 기계 수확이 어려운 작물로 손꼽혔다. 베지봇은 첨단 절단 시스템을 장착해 이 난관도 극복했다. 케임브리지대는 이 기술을 이용해 다른 작물을 수확하는 로봇도 개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최근 농촌은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다. 전통적 형태의 노동집약적 농업은 한계에 이른 상태다.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농촌진흥청은 2030년까지 드론과 로봇이 씨를 뿌리고 농약을 치고 나아가 열매까지 수확하는 농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농업이 구현되면 농민은 스마트폰으로 집 안에서 농지 토양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에 ‘밭에 물 뿌릴 시간’을 입력해 자동으로 땅을 촉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드론이 작물 병충해 상태를 파악하고 알아서 농약을 살포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드론이 토양 점검, 농약 살포하는 시대
미국 농기계 제조사 ‘존디어(John Deere)’의 협력업체인 ‘타라니스(Taranis)’는 AI를 활용한 농업 정보 플랫폼 기업이다. 이 회사는 최첨단 드론 기술을 이용해 농업 종사자가 정보에 근거를 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예를 들어 60m 상공에서도 잎에 기생하는 곤충을 식별할 수 있는 고화질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으로 농지를 모니터링한 뒤 AI 및 자동화 솔루션을 활용해 작물병과 해충 손상 등을 미리 감지해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19년 7월 부산 강서구의 논에서 드론을 활용한 벼 병해충 방제 시연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우리나라에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메타로보틱스가 공동 개발한 ‘방제드론용 지능형 작업관리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기존 드론 방제작업의 문제점을 개선했다. 과거에는 드론 운용 자격증을 보유한 조종사가 경작지 상황을 눈으로 관찰하며 약제를 살포하다 보니 방제가 중복되거나 누락되는 구간이 발생하곤 했다. 장애물로 인한 충돌 또는 추락 사고 위험도 컸다.
‘방제드론용 지능형 작업관리 시스템’은 다르다. 온라인 위성지도에서 농경지를 선택한 뒤 방제 구획으로 지정하면 드론이 스스로 최적 비행경로를 설정할 수 있다. 약제 살포도 자율주행처럼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약제를 고르게 분사할 수 있는 셈이다. 농민, 드론조종사, 드론제조사 등이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방제 진행 상태를 스마트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 글 / 이노핏파트너스 윤정원 대표
| 정리 / 이노핏파트너스 마케팅팀